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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선희 작가와 고라니 혹은 고라니와 문선희
    무서록5 2023. 10. 18. 11:10

     

    혼자 텃밭에서 잠깐 일하고 있는데 야산 쪽에서 잔가지 부러지는 소리와 무언가 거칠게 지나가면서 나뭇잎들이

    부딪히는 소리들이 요란했다. 순간, 야생개(이 동네엔 주인없는 개라기 보다는 stray dogs라는 영어표현이 적절한 무서은 녀석들이 꽤 있다) 가 무언가를 쫓는 건가 싶었다. 돌아가보니 세상에 고라니 두 마리가 뛰어 노는 거 였다.

    둘이 싸우는 건지, 장난치는 건지 확실하지 않았지만 적의가 보이진 않았다. 

    조용한 동네의 정적을 깨고도 남음이 있는 아름다운 균열.

    뒤늦에 폰을 켜서 왼편으로 달려가는게 조금 찍혔지만, 눈앞에서 두 마리가 언덕을 오가며 빙글빙글 쫓고 쫓기도 했다.

    동네 사람들의 탄성도 들려왔다.

    이 산이 산책로가 조성이 안된 원시림 비슷한 것이 고라니들의 쉬는 공간이 된 듯 보였다.

    -

    문선희 작가를 알게 된 것도 꽤 오래된 거 같다. 어떤 전시회에서 소개로 잠깐 인사를 했었는데 그의 첫인상은

    예민한 초식동물의 눈빛을 하고 있었다. 아마 그도 그런 말에 조금 질려있을 지도 모르지만. 그런 그녀가 고라니를 촬영하다니 내심 흥미롭기도 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었고, 고라니를 촬영한다고 해서 '무분별한 유해조수 사살 문제'정도를

    다루나 보다...했다.  그건 내 어리석음있다.  그에게서 고라니에 대해 들은 첫 이야기는 작은 경이로움이었다. 고라니가 '고대의 사슴'같은 존재, 송곳니가 있는 사슴들이 멸종했는데 남은 것이 고라니라는 것, 아니 고라니가 코끼리 상아처럼 보이는 송곳니가 있었다니!  알고보니 그녀는 환경부 정책집과 각종 논문, 기사 등을 통해 공부를 했고 고라니를 바라보는 관점이 왜 달라져야하는지 논리적으로! 그리고 작품으로 설득한다.  그런 그가 책을 냈다. '문명과 야생의 경계에서 기록한 고라니의 초상' [이름보다 오래된](출판사:가망서사) 

     

    문선희 작가는 쉬 보이지 않는 흔적들을 살핀다는 점에서, 개인적으로는 화가 이설아 작가와 닮은 구석이 있다고 생각한다.

    자신만이 알아보는 흔적과 그 흔적의 작은 아우성의 의미를 환기시키고, 예술적으로 증폭시키려고 열중하는 아름다운 뒷모습을 가진 작가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그는 자신의 작품 수백컷 보다 고라니 한 마리를, 단 한마리 고라니의 다친 다리를 

    치료하는 것이 훨씬 소중한 사람임이 분명하다.

    최근에 상을 탄 거 같은데 축하드린다.

    고라니의 송곳니

     

    개인적으로 편집에 관여했던 영상이라 링크걸어둔다.

    https://youtu.be/2uKZi2-LE-g?si=sHstnMbdZcrD9F-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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