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의 최후
- SS에 L선배와 만나기 위해 갔다. 비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만난 사장은 반가워했다. 그는 허리 때문에 1년 이상을 휴업했고 가게가 다시 영업을 하고 나서도
정상화하는데 1년 이상 걸렸고, 저간의 상황을 이야기했다. 창 밖으로 사관학교 제복을 입은 여학생 둘이 우산을 받쳐 들고 지나가고, 임마누엘 베아르를 닮은 젊은 아가씨가 통화를 하며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사라졌고 1분여 뒤에 다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지나갔다. 이 가게에서 중국단풍이 질 때, 그리고 눈이 내렸을 때 거나하게 취했다. 박모씨, 윤모, 곽모와도 왔었고, '팔팔하게'친구들도 왔었다. 비싼 집이지만 워낙에 깔끔한 실내, 조그만 어항이 있는 깨끗한 화장실 무엇보다 독특한 음식 솜씨가 돋보여서 가끔은 무리하게 지갑을 열어도 기분이 나쁘지 않은 집이었다. 광주엔 이렇게, 일본의 음식만화에 나올 법한 '장인의 열정을 가진 장사꾼' 혹은 '까탈스런 성깔의 요리집착남'은 드물다. 근데, L선배가 들어와 마시던 중 어느 중년 남녀가 갑자기 두리번 거리며 들어왔다. 잠시 후 사장의 당황한 듯한 말이 들려왔다. 중년 여자는 바뀐 건물주로 월세를 10만원 더 올리겠다고 통보하러 온 것이다. 문제는 초면이라는 것. 사장은 다짜고짜 건물주라고 밝히고 올리겠다는 두 사람(남자는 그녀를 코치하러 온 업자처럼 보였다, 조카라고 둘러댔지만)때문에 저으기 당황했고 화가 났고 전 건물주에게 전화를 걸어 호소했다. 그리고 내 옆자리에 앉아 오줌마려운 강아지마냥 안절부절 못하고 어떻게 해야하느냐고 물었다. 우리는 일단 그들의 인상이유(부가세 신고 때문에 올린다는데 그 건물은 임대수입이 2000만원이 안돼서 부가세 부과대상 건물이 아님을 전 건물주와 통화중 알아냈다)를 너무 몰아세우지 말고 다음 화요일에 만날 때, 잘 한번 알아보시라고 단, 기분 나쁘지 않게 얘기해야한다고 의견을 보탰다.
내 차의 대리운전기사가 먼저 우산을 쓰고 왔다. 우산이 없었던 나는 초면의 그와 너무나 자연스럽게 어깨동무를 하며 우산 밑의 공간을 쪼개어 쓰고 차로 달려갔다.
'팔팔하게'친구들이 모인 '복불복'으로 갔다. 옆자리에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자들 셋(모자를 쓴 목소리가 호탕한 여자, 콧날이 이쁜 얼굴 하얀 여자, 덩치가 있는 여자)이 술을 마시고 있었는데, 중년의 남자와 여자들은 내리는 창밖의 비와 함께, 그리고 식당에 틀어진 TV조선의 이선희 공연과 함께 자연스럽게 어울리고있었고,
한쪽 테이블의 중년 여성 둘은 윤도현이 노래할 때 손수건을 흔들며 박자를 맞추고 취해갔다.
그 때 나는 친구둘을 찍어서 갤럭시 기어3에 전송했다.
그리고 간다는 말도 없이 집에 와서 자주 가는 블로그에 접속해서 그림 한 장을 봤다.
그리고 캡처.
비오는 날의 최후는 땡땡이 우산을 쓰고 물놀이를 하는 남자.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