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VIET PARTISANS - FAYE SCHULMAN
오늘 기억해 볼 한 장의 사진은 --
무슨 사진 처럼 보이나?
겨울산, 20세기 초, 백인 청년들, 우정 혹은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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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은
Soviet WW2 partisans with Faye Schulman- a Polish Jewish partisan photographer
설명이 맞다면, 파에 슐먼이라는 '빨치산'을 찍는 유대계 폴란드 사진작가가 소비에트 빨치산과 함께 한 사진.
폴란드야 유대인들이 많았고, 유대인들이 붉은 군대가 히틀러를 몰아내기를 염원했던 걸 감안하면..
분위기가 짐작이 되는 듯.
소련군이 베를린에 진주하여 저지른 어마어마한 전쟁범죄(특히 광범위하게 진행되고 묵인된 독일 부녀자 강간, 살해 등)가
이어진다는 것을 감안하면, 인류사는 돌고도는 건가..
혹은, 이스라엘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들에 대한 죄악은 또 어떻고..
전쟁에서 가장 큰 피해자는 아이들과 여자들.
이하 by 라면
파에 슐먼이란 사진 작가를 알지는 못한다.
하지만 사진을 찬찬히 보면 실제 파르티잔 같지는 않다.
소위 말하는 ‘연출된 냄새’가 난다.
옷이 너무 깨끗하고(의복들이 하나같이 공장에서 나온지 3일도 안된 듯 하고, 게다가 남자들은 하나같이 똑같은 유니폼을 입고 있지.. 당시 소련군 동계피복을 말이다.) 무기류도 당시 최신 소련제 장비라는거, 게다가 독일 점령지역에서 목숨걸고 활동하기에는 영양상태가 너무 좋다는 것도...
이들이 진짜 파르티잔이었다면 옷은 너덜너덜 이것저것 덧대 걸치고(심지어는 독일군 군복도 빼앗아 입었겠지... 졸라 추우니까) 무기류도 일부는 독일제 총기였을테고(탄약 수급도 그게 훨씬 편하니까... 당시 독일총과 소련총은 총구 구경이 달랐단다... 저렇게 소련제 총기는 지속적인 실탄보급이 필요하다... 적진속에서 활동하는 훈련 안된 소수의 민간인 그룹에 지속적인 보급에 힘쓰는 군대가 있을까???). 그리고 파르티잔은 못먹고, 못씻고, 못자서 눈이 퀭하고, 꾀죄죄하고 뭐 그렇지 않을까...???
공산권 국가들은 거의 본능적으로 선전전에 능하단다. 일명 개죽음 당한 하급병사도 하루아침에 영웅으로 변모시키는 건 일상적이고...
실제로 독소전에 러시아 파르티잔은 존재했다.
이들의 활동이 전황에 어느정도 영향을 끼쳤다는 것도 정설이고...
독소전이 시작되고 우크라이나 등 소련서부지역은 점령자 독일을 많이 환영하는 분위기였다. 소비에트 연방이 성립된 후, 이 지역은 백계 러시아를 많이 지지하는 지역이었고, 그에 따라 스탈린의 착취, 억압 역시 매우 심했다.
1941년 여름 독일군이 밀고 들어오자 이 지역에서는 내심 독일군을 해방자로 여기는 분위가가 팽배했다.
실제로 이 지역을 점령한 독일국방군들도 어안이 벙벙할 만큼 주민들은 꽤나 협조적이었다.
하지만 독일국방군을 후속해 이 지역에 들어온 SS들의 만행의 칼끝이 지역주민들을 겨누었다. 수많은 부녀자를 포함한 주민들이 학살당하고, 집과 재산을 빼앗기고, 능욕을 당한 후에야 독일에 대한 호감이 반감으로 바뀌고, 결국 자신과 가족을 지키기 위해 산이나 숲으로 숨어들어가 침략자 독일에 대항하게 된다. 나찌가 가장 증오한 민족은 유태인, 그 다음이 슬라브인이라는 것을 러시아 서부지역 사람들은 몰랐었다. 러시아 당국은 제코가 석자라 자생적으로 활동하는 이들을 지원할 여력이 없었고(여력이 있었더라도 이들 지역을 탐탁치 않게 여긴 스탈린이 지원을 제대로 하지 않았을 꺼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이것이 독소전 당시의 파르티잔의 시작이다.
이들은 독일에 대한 구체적인 적개심으로 허술한 조직력과 훈련정도, 무장정도 등을 무릅쓰고 독일국방군 주력이 지나간 자신의 터전에서 군수, 보급 등 후방부대(소위 말하는 B급부대)를 습격하는 등 무장투쟁을 개시한다. 이들이 뿌린 피에 비해 전과는 미미했지만 증오심을 바탕으로 끈질기게 유격활동을 벌여 그렇지 않아도 매우 길어진 독일군의 보급선을 곳곳에서 차단했고, 적지않은 수의 전방부대원들이 이들을 토벌하기위해 최전선에서 돌려지는 결과를 만든다.
독일당국은 이들을 생포시 혹독하게 다룬다.
조야 코스모데미안스카야...
18세 소녀 파르티잔...
독소전 당시 대표적인 소비에트 파르티잔이다.
이 소녀는 잔학한 SS의 만행에 가족을 잃고 파르티잔이 되어 활동하다가 생포된다.
독일군인들에게 윤간을 당하고 교수형에 처해지는데 살해된 후의 사진을 보면 왼쪽 젖가슴이 도려내어져 있다. 도려내고 교살했는지, 죽은후에 도려냈는지는 확실치 않다)이 사진은 소련군에게 사살된 무장친위대원(무장SS)에게서 발견되는데 곧바로 소련당국의 아주 좋은 선전전 재료가 된다.
독일을 향해 진격하던 소련군의 구호중 하나가 ‘조야의 원수를 갚자’였단다. 이 때문인지는 몰라도 소련 점령지역의 독일영토에서는 치마만 둘렀다 하면(유아건, 할머니건 대부분의 독일여성들...) 소련군에 의해 몹쓸 짓을 당하고 심지어는 잔인하게 살해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해서 서기 300년대 게르만족의 대이동에 버금가는 서쪽으로의 대피난행렬이 있었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 사진은 실제 파르티잔을 찍은 것 같지 않다.
그냥 소련군이, 혹은 인민배우들이 파르티잔인척 코스프레하고 찍은 사진일 가능성 99.9%(0.1%의 여지는 남기겠다 ㅎㅎㅎ)
찾아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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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jewishpartisans.org/t_switch.php?pageName=mini+bio+images&fromSomeone=&parnum=56
Two weeks after the mass killing in Lenin, during a partisan attack, Faye escaped Lenin and joined the partisans of the Molotova Brigade. When she saw someone she knew, it was a moment of great joy…. ‘These boys escaped the Nazi-occupied half of Poland and came to Lenin in 1939, when we first met…. I was happy to meet three Jewish boys together. In my brigade, I couldn’t even say I was Jewish…. So, when I saw boys I knew, I was very happy not to hide anyth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