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효[삶의 도와 불교] 제5강 부터
제5강 공통의 관심사로서의 이익
이익. 자유로운 자발적 운동. 불교사상은 어떤 철학보다 자유사회를 지향(이 부분에서 공산권 국가의 인상비평을 함..사람들이 표정없다 등등)
마니주(여의주)는 보배. 보배를 돌리면 이익이 온다->소원성취. 무정물들도 자기에게 이익이 되는 부분으로 움직인다. 이익과 관계없는 사람은
없다. 불교는 이익추구의 본질적 해답. 인문학자들은 탈자본주의적 세계를 그리워?하는데 그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불교는 이익의 문제를
편견없이 바라보게 산다. [맹자]의 양 혜왕 편. 왕이 '당신이 오니 우리에게 큰 이익이 되겠다'.. 맹자왈 '하필이면 내게 왜 이익을 묻는가?' ->
유교적 입장에서 의를 추구해야 이를 추구하면 안되니까. 조선조 500년 문화도 '의' 중심문화였다. 명목상으로도 그랬다.. '의'와 '이'가 대립하는가
義가 반드시 利를 배제하는가. 정선의 그림은 경제적 평가를 위해 존재하지 않지만, 경매로 가격은 오른다. 탈경제적, 탈가치..등도 세월이 지나면
경제적 가치로 환원될 수 밖에 없다(?). value -> 그 의미가 경제학에서 가격, 철학에서는 가치. 붓다의 진리는 부처도 바꿀 수 없는 진리를 가르치기
위함이다. 다른 철학과 종교의 도는 교주가 새롭게 찾아낸 도라고 본다면, 부처는 있는 진리를 그대로 봤을 뿐이다. 그 사실을 인정하고 살 것을
교육한 것. 금강경, '제법여의' - 있는 그대로 존재하는 법도, 그걸 삼매속에 발견한 사람이 부처. 사실의 종교일 뿐, 이념의 종교가 아니다.
그래서 과학자들도 불교에 호감이 있는 것. 인간도 자신에게 이익이 된다고 하면 생기발랄해지고.. 그 불교적 의미의 이익은 상생의 이익이다.
순록을 치는 사람이 제일 싫어하는 동물은 늑대. 늑대를 없애기 시작하면..오히려 순록은 점차 사라져가고.. 선과 악을 가를 수 없다.
나는 선의 편, 너는 악의 편하는 것은 융통성없는 사회의 병폐. 조선조도 비슷. 어린아이는 의도적으로 선과 악을 행하지 않는다, 천진불.
진드기는 해충이나 먼지를 먹어치우므로 방의 공기를 깨끗하게 해주는 측면도 있다.21:12